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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9 고교교사 (高校敎師, 1993 & 2003) - 우리들의 실패 9
바야흐로,
노지마 신지의 작품이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노지마 신지의 작품은 분명히 불편하다. 그래도 분명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최상급 네임벨류의 작가 노지마 신지.
암울한 소재에서 우울한 주제를 이끌어내어 충격적인 파급 효과를 양산해내는, 노지마 신지 각본의 대사들은 이른바 '척'을 하지 않는다.
배우의 대사에 자신이 작가라는 거들먹거림이 없다는것. 그냥 배우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우리들의, 또 우리 그 외 그네들의 모습일 뿐이다.

고교교사는 진정성이 사라진 지금의 이기 속에서, 일말의 진정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교사와 제자의 금단의 사랑을 표면에 내세우고는 사람, 또 그 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시에,
나는, 우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걸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1993년 방영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문제작이었던 고교교사의 10주년을 맞아 다시 제작된,
우에토 아야와 후지키 나오히토 주연의 2003년판 新고교교사를 원판에 앞서 보고, 추후에 1993년 원판 고교교사를 보았다.
배우의 아우라 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옆집 아저씨같은 비쥬얼인 남주의 외모에 심란함을 금치 못했던 마뜩찮음에도 원판을 찾아든건,
원판보다 리메이크판을 먼저 보다보니 문제의 영어교사 주변의 아우라가 잘 정리가 안되었던 이유였다.

희한하게도 원판과 신판을 잇는 스토리는 이 문제의 영어교사밖에 없다는것. 주인공간 스토리와 주변인물의 스토리까지 어레인지 되어 있었다.

보다보니 그 심란한 캐스팅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던것이 1993년판 고교교사의 남주 캐릭터 자체가 워낙에 수더분하고 어리숙하게 잡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연기 자체가 미숙하게 느껴질정도의 수더분함 그 자체에, 칼미모의 일본남우들에 지친심신및 안구정화를 꾀하며 일어공부를 하는 나에게는 극심한 인내가 필요했다는 것. 그에 더해서 아무리봐도 고교쪽보다 후덕한 중년 오바상의 포스의 노지마 신지 단골히로 사쿠라이 사치코 역시, 해서 그시절의 주연들은 그냥 스윽 스쳐보내며 보았다.

 
2003년판 신고교교사에서의 후지키 나오히토와 우에토 아야의 조합은 아주 좋았다.
후지키의 여린미모와 우에토 아야의 기분좋은 귀염성이, 노지마 신지 작가 특유의 극암울함에 잘 섞여들어 정도껏 순화되어 주었다.
확실히 원판보다 보기에도 수월했고 기억에도 더 오래남는다. 아마 두 주연배우를 고교교사를 보기 이전부터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993년판은 극전개가 거칠다. 매끄러워보려는 노력은 여기저기 좀 있었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비해 꽤나 어색한 극흐름이 주는 괴리감에 볼때도 보고난 다음에도 역시 어딘지 불편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세간의 미숙한 평가처럼 비현실적이라거나 황당하거나 엽기적이라는건 아니다. 분명히 인간세상사 켠켠에 자리잡은 슬프고 가여운 일들인데, 우리는 그걸 애써 부정한채 정상적이라는 범주안에 비정상적인 자신을 가둬버리는 모순을 범하고들 살아간다. 당장, 요즘의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이 고교교사의 스토리는 웃어 넘기는 수준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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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보실 분들은, 네타주의 쎈쓰!


너무 많다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극단으로 치우쳤다 라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법하고 분명히 있다는 걸 알기에 더욱 암울하다.

일방통행인 동성애, 이지메, 서로 다른 연애관에 상처를 주고받는 남녀, 사람을 말미암는 사람의 배신, 남교사의 여학생 성폭행과 협박,
친부와 친딸간 근친 관계와 집착, 남교사와 여학생의 금단의 사랑, 살인, 결국 동반자살.
이 압축해 놓은 전개에한숨을 세는...

 


2003년판 같은 깜찍발랄 귀여운 로맨스 전초전이 1993년판의 사쿠라이 사치코와 남자 배우에게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부담스럽다. 지금으로부터 십수년전의 작품인 만큼 그 시절의 아이콘이었던 닭 머리, 그리고 부담스러운 어깨 패드와 배바지, 또 요즘처럼 배우들이 외모를 완벽하게 가다듬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화면이 낯설다.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고 그야말로 답게 느껴져서 친근하기도 했다만, 낯선 몸매들 앞에서 설익은 감정 이입에 피식 웃었다. 진짜 사람들을 놔두고 감정이 설다니 말이다.

1993년판은 너무 큰 뭉텅이만을 던져주고 그 포장의 끈을 풀지 않는다. 통째로 던져 놓으니 그러 마하고 보면서도 불편할 수밖에.
물론 노지마 신지 드라마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2003년판에서는 '왜?'라는 물음에, '아마 그러니까!' 정도의 답은 돌아오게 해 줬다.





   
 

스토리 전개는 시작부터 원판과 전혀 다른 가닥인 시한부 스토리, 우리에게 꽤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깜찍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드라마였던 동시에 많은 생각을 던져준건 외려 이 2003년판이었다. 
몇년전이었던가? 후지키 나오히토 버닝모드 였을때 본 신고교교사. 내가 본 후지키 드라마중 후지키의 매력이 가장 반짝였던 드라마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실제로도 와세다대 출신인 그의 수재 연기는 자연스러웠으며, 가는 그의 실루엣은 여리고 약하여 그를 보는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최고조로 이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던 후지키가 의사와 상담하는 자리의 대화를 엿듣게 된 우에토가 자신에게 내려진 시한부 선고로 착각하고. 후지키는 엉겁결에 그리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 오해의 상황극을 엮어가기 시작한다.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채...
그는 누구도 알아주지 못할 자신의 마지막 아픔을 함께 겪을 이가 필요했던거다. 그걸 그는 그에 걸맞게도 '실험'이라 표현한다.
자연스레 우에토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후지키를 의지하게 되고, 결국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와중의 사이에 선 후지키의 담당여의사의 대사, 나 역시 계속 생각하게 한 대사, 생각해도 답을 내릴 수 없었던 대사.
작가 역시 답을 내리지는 않았다. 여의사의 입을 통해 뱉어낸
'의지가 계속 이어지고 있구나!' 는, 질투와 편견의 구석에서 나오는 오만함이었을까? 아니면, 보살핌과 동시에 의지하고 싶었던 남자를 소유하지 못했음에 터진 회한의 외마디 절규였을까?
결국 노지마 신지는 무어라 결론 내리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은 없다'였을까? 아니면, 그 속에서도 '사랑은 있다'였을까?
 

내가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때 그 절망을 함께 해주는 이성이 있다면 아마 대부분이 서로에게 애정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애정은 진정한 사랑의 감정일까? 아니면 의지하고 싶고 보살펴주고 싶다는 연민의 주고받음일까?
연민이라면, 결국 그 감정은 애정이라는 감정과 이어지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사랑은 어떤 감정까지 포함하고 있는것일까?

여기에서 나의 생각은 멈췄다. 결국,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없다.
 
 



문제의 영어교사
2003년판의 베니코와 호스트의 관계는 세상만사 남의 일은 그저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보는 이에게는,
이해의 수준을 벗어남에 혀 몇 번 찰 정도의 관계쯤으로 여겨지겠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살며 살아오며 주변 이들의 연애라는 감정과 행동들을 봐온 결과,
뻔히 보임에도 속고 속이며 더욱이 그런 농락을 사랑이라 말하기까지 하는 우리 주변의 이들, 딱할까? 글쎄! 어쩌겠나.
자신이 그것을 설렘으로 느끼면 어쩔 수 없는것. 극
단적인 관계같아 보일 뿐, 지금의 속에선 지극히 평범한 관계라 여겨진다.

어떤 사랑이 아름다울까. 어떤 사랑이 추한걸까. 답은 쉽지 않고 어렵지 않다.
 

이 2003년판의 쿠도 베니코를 선도함으로 1993년판에서의 자신의 죄를 씻고저 했던 문제의 영어 교사.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는 잡아챘다고는 말 못하지만, '왜?' 라는 의문스러움에 '아'! 하고 어렴풋이 느껴지는 무언가는 그건,
결핍된 어린 정.
그의 빈자리는 무섭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슨짓을 해도 좋은것이다. 그걸 사랑이라 믿는다. 역시 존재한다.
'그런 사람이 설마, 있겠어?' 라는 생각은 지금 이 세상 속에선 상처의 표상이 될것이다.

 


맺음
동반자살. 생생하게 남아있는 1993판의 맺음.
서로의 손에 감는 붉은 실. 너와 나는 죽어서도 떨어질 수 없는 운명.
너와 내가 이승에서 다할지라도 또 다시 이어질 수 있게 너와 나의 손가락에 엮어 맨 붉은 실.

애매한 장면으로 맺음된 2003년판. 뭐라 결론 지을수 없다.
그들의 행복이 이어졌기를...

왜, 있음을 부정하며 살까? 사람아!
사람답게 살고 싶으면 같이 사람답게 살자. 사람들아!







 
Posted by ella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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