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았다. 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 돌아보는 그 순간,
소녀와 소년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벚꽃이 지는 속도 초속 5 cm
추억이 지는 속도 초속 5 cm







2007년 
초, 선행 공개된 약 20분 가량의 제 1 에피소드 '벚꽃초'의 영상을 본 후로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었지만,
여름을 기다려 가을에 봤던 완전판 초속 5 cm는 내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마찬가지로 공개되었던 선행 영상을 봤던 이들이라면 극장판에 실망감을 느꼈을 이도 상당수 있었을 듯 하다.

에피소드 1 '벚꽃초'에서 에피소드 2 '코스모넛'으로 이어지는 브릿지에서의 위화감을 수용하기가 어려웠다.
믿기지 않을만큼 쏟아지고 있는 눈 속에서 오지 못하고 있는, 오지 않고 있는, 언제올지 모르는 소년을, 그 겨울의 역 대합실 한구석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마침내 소년을 본 순간 그의 옷자락을 부여쥐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던 소녀의 눈이 어째서 그를 향하지 않게 되었을까... 완전한 망각이라는 여지였다면 혹 모르겠다. 허나, 소년의 시선은 여전히 소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감독의 시선이 원망스러웠다.

단지, 시간이야만 했을까...
단지, 인생이야만 했을까...

그 찰나의 애잔함만을 전해주고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변명속에서 새로운 시선의 고리를 생성해가는 감독의 시선은 납득하기가 싫었다.
3개의 에피소드가 아닌 4개의 에피소드를 1→3→4 의 순서로 이어지게 만든 시나리오 영상을 감상한 느낌이었달까.

실사와 별다를바 없다 여겨질만큼 정밀한 배경 묘사와 탐미적인 풍경 영상은 정말 빠져들고 싶을만큼 아름다웠다.
그에 비해 늘 지적되어 왔던 캐릭터 작화의 취약점은 이 작품에서도 그리 나아진것 같지는 않다. 왜일까. (정말 궁금하다)

위화감이 주는 실망색이 짙었던 에피소드 1과 2의 브릿지와는 달리,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던 에피소드 3부분은 좋았다. 너무 짧음에 불만을 내보이는 이들도 있겠지만, 구태여 절절한 해설이 필요 없는 부분이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어렸던 그 시절에 있었던 약속과 연,
한마디로, 지나가는 자리가 되버린 추억들은 '그땐 어렸었다' 라는 한마디로 모든것을 일축시켜 버리곤 한다.

설령 그것이 그때는 진심이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초속 5 cm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져버리는, 추억이 지는 속도 초속 5 cm.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 특유의 어찌할바 없이 애잔함에 젖어드는 서정성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 애잔함뒤에 남겨지는 한숨섞인 씁쓸한 회한 역시 여전했다.




 

★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각본, 제작 작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1999)
별의 목소리 (2002)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2004)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지키지 못한, 또 지키지 못할 것들에 대한 미련한 미련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보게되는게 그의 작품이었다. (마치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맘에 들어하지 않으면서도 대부분 챙겨봤었던 것처럼)

자신과의 약속을 끊임없이 져버리는 자기 합리화를 흐르는 시간속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구차한 변명을 애잔한 감상속에 묻어버린다. 지키지 못한 책임은 뒷전으로 미뤄서 잊게 하고는, 영상에 흠뻑 빠져버린채 애상만을 남겨준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가식적인 인간의 이기를 안타깝다는 부질없는 회한의 감정으로 미화시켜버린다.
너무도 당연하게 잊혀져가는 시간속의 연들을 미학적으로 표현해내는 그의 시선에,
짜증감을 느끼면서도 신뢰감으로 챙겨 보곤 하던것이 그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 후 앞으로는... (보지 않을것이다.. 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이 글을 썼던 2007년에는.)
Posted by ella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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