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19. 21:57 紫昕月 - 자색새벽달
과거에 따른 운명의 이름, 느와르 (NOIR, 2001)
공각기동대의 I.G 社에서 주 제작한 마시모 코이치 감독의 작품.
이 간단한 정보만으로도 느와르라는 작품의 성향과 작품성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보기 전부터 기대감을 가득 안고 시작한 애니메이션을 완결지은 소감은 기분 좋게 역시나 라고 할 수 있겠다. 전체적인 스토리상 뭔가 조금 부족했다는 느낌은 없지 않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나 그 외의 면에서 대체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여타 작품들과 다른 각도에서의 시도들이 신선했고, 작품 배경상 나긋한 이국적 정취와 여운의 꼬리를 길게 남기고 떠나는 듯한 매화의 마지막 장면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또 그에 못지않게 인상깊은 오프닝. 제작 의도대로 007시리즈의 오프닝을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것 같은 나른한 액션 장면들과 강렬한 색채 대비로 두고 두고 시선을 잡아두어서 매화 아주 착실하게 감상했다.
느와르 하면 작품보다 음악이 유명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악적 퀄리티는 정말 대단하다. 출시된 OST만 해도 총 5장이라니, 얼마나 음악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정말 26화 내내 흐르는 음악들과 작품과의 밀입도가 완벽하다고 해도 과찬이 아니며 왠만한 수준의 영화 OST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아쉬운점 하나는 작화가 부분적인 면에 한에서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다는것. 배경 묘사는 신경쓴 흔적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평균 이상치였고, 다른 캐릭터 작화도 평이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인데, 유독 주인공들의 작화가 어딘지 약간 어설프게 느껴진다. 이 감독은 자신의 작품들중 대부분에서 히로인 캐릭터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작품에서보다 유독 느와르에서 어설프게 느껴진다. 충분히 작화적 퀄리티를 끌어올릴수 있었을텐데 의아스럽다.
내용적으로는 느와르적 색채가 짙기 때문에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가 한층 더해졌다. 전체적으로 봤을때 난해한 스토리 구성은 아니지만, 역시 가볍게 생각하고 볼 작품은 아니다. 초반에 조금 지루하다는 평을 익히 들었지만 그래서 그런지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 초반에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듯한 스토리적 전개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것 같은데, 보려고 생각하고 보는 사람들에겐 지루한 감을 줄 정도는 아니며, 그 나름의 던져지는 메시지는 각각이니 받아들이는것 역시 나름이 될 것이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총격씬이나 불사신같은 주인공들의 활약에 의구심을 갖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텐데, 이 작품은 일단 액션물로 분류되긴 하지만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은 절대 아니며 액션씬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런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두명의 여자 주인공이 존재와 실체감이 불투명한 거대한 집단에 대항하는 이 작품의 주 전개 스토리 자체가 말도 안되는게 될테니까.
코드명 '느와르'
살인청부 대행업계에서 1순위인 미레이유와 '과거로의 순례' 라는 복선 깔린 메시지로 그녀와 동행하게된 키리카. 한조가 되어 움직이는 그들을 칭하는 코드명 느와르. 감독이 여성 액션 버디물로 이 느와르라는 작품을 표현해낸 이유는 보면서 차츰 짐작해낼 수 있다. 많은 생각을 안겨준건 반복되는 초중반의 살해 임무 완수 장면들에서였다. 각기 다른 사연과 이유를 가진 살인 의뢰인들과 그 대상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진지한 생각의 끝에 직면하게 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렇지 아니한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그렇지 아니한지, 인간 다움과 그렇지 않은것, 또 사람과 사람사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 용서와 관용과 포용,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면서 보게되었다.
살해의뢰를 맡고 그 대상자를 만나 그의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면모와 대면하게 된다.
그런 그를 킬러인 그녀는 죽일것인가? 죽이지 않을것인가?
과거에 분명히 죄를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죄를 씻기위해 그만큼 자신를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 과거에 지은죄로 그는 죽어서 마땅한 사람인건가? 그 죄라는 죄에 앞선 원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런 그는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암살의 임무를 띠고 찾은 그가 위험에 처하자 구해주고는, 그 대상자와 마주앉아 인간적인 대화를 나눈다. 그런 그를 암살자는 죽일까? 죽이지 않을까?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의 피맺힌 원한을 듣게된다.
결국 그녀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지만 그 뒤, 그녀는 그의 원한 맺힌 그 상대를 찾아가 살해한다.
이 장면들이 가장 많은 생각을 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것. 답은 없었다.
결말로 치닫으면서 초중반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느와르라는 말은 폭넓은 의미를 아우른다고 볼 수 있으니 그 혼란 역시 느와르라 받아들이면 되겠다. 크로에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키리카는 말한다. '크로에는 또 다른 나였어'. 이 말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상당히 난해해질 수 있다. 되짚어지지 않은 느와르의 이 '또 다른 나'는 이 감독의 2004년 작품인 매드랙스로 이어져서 심층화 된 듯 하다.
알테르라는 인물과 그 주위를 아우르는 배경을 본바로 조심스럽게 짐작컨데, 종교라는 조심스런 색채를 판타즘적인 요소를 넣어 우회적으로 인용하여 삽입한듯 한 느낌이 든다. 구원이라는 명목을 내세운 종교라는 실로 거대한 집단들이 강요하고 행하는 맹목적인 믿음. 거기에서 기인한 수많은 갈등과 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상처를 입는가. 종교라는 집단을 만들어 낸 건 명백한 인간이다. 종교라는 대상이라해도 인간이 모여 집단을 이루는 과정은 신의 유무와 그에 대한 믿음과는 동떨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라. 그 집단들이 거대해질수록 종교는 본래의 기능보다는 인간들의 집단논리에 순응하게 될터, 그 상처입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종교라는 집단에 인간들은 다시 한 번 상처입게된다. 알테르의 불운한 과거와 겹치는 '사랑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증오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대사에서 은연중에 나타나 있듯이 구원이라는 말이 얼마나 과거로부터의 허상만을 좇아있는 것이고 또 그 허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인지. 종교를 지칭하는것일수도 종교를 빗대어 지칭한것일수도 있을터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됨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보다보면 문장 자체의 뜻을 파악하기 힘든 대사들도 꽤 있다. 그래서 외려 의미없게 느껴지기도 하니 연출적인 부분에 있어서 지나치게 주관적이지 않나 싶은 면도 조금은 있다. 꼭 어렵고 추상적이여야 깊고 함축적인 메시지를 지니고 전해질 수 있는건 아닐텐데 말이다. 너무 쉽게 다가오는것은 생각하게 하는걸 차단하니 바람직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너무 난해한것 역시 바람직하진 않다. 적당한것이 좋을테지만 그 적당함이 힘든것이다. 우리들 인간은 응당 그렇고 우리에게 투영되는 신이라는 존재 역시 그렇지 아니한가. 이런 메시지 역시 작품을 보고 그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니 결론적으로는, 좋은 작품 잘 봤다는 말이 되겠다.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나른하고 느긋하게...
★ 여기서 잠깐 소근 (네타)
마시모 코이치 특유의 연출법인(뭐 거의 묘미수준인) 설명 안해주기와 정리 안하기의 의도적 불친절한 설정들은 역시 의문으로 남는다.
키리카의 기억상실 :
설명이 없을꺼라곤 예상했지만, 후반부에 보여준 장면들을 종합해보면 상당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해서, 과거에 대한 기억 상실이란 설정 자체에 그다지 의미두지 않는게 좋을것 같다.
표현하자는건 기억 상실이아닌 정체성 상실로 보는게 정확할듯 하다는 주관적인 소견.
키리카와 크로에 :
미레이유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설명이 되어있지만 키리카에 대한 이유의 설명은 없었고 크로에도 마찬가지.
이 둘의 관계 이유 역시 당연히 없었다. 크로에의 죽음앞에서 '또 다른 나'라는 키리카의 한 마디. 아, 어쩌란 말인가.
해서 이 부분은 그냥 매드랙스로 넘기는게 좋겠다는 주관적 소견.
마지막 총성 두 발 :
상징적이다 vs 그렇지않다. 의 두 의견이 분분하다.
두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겠지만, 상징적이라는 해석은 그 반대의 해석보다 개연성이 부족하지 않나 싶은것 역시 주관적 소견. 소르더를 뒤로 한 채 걷고 있는 미레이유와 키리카의 마지막 컷이 사라진뒤 들리는 총성.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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